“빚은 인플레이션이 갚아준다”는 말을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겁니다. 그런데 정말 얼마나 갚아줄까요? 20년 전 실제 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오늘까지 다 갚았다고 가정하고 숫자로 확인해 봤습니다. 결론부터: 인플레이션은 이자의 절반쯤을 덜어줬지만, 이자를 없애주지는 않았습니다. 다만 어떤 자로 재느냐에 따라 답이 세 가지로 갈립니다.
2006년 주담대 2억 원, 20년 동안 얼마를 갚았나
2006년 9월 예금은행 신규취급 주담대 금리는 연 5.77%였습니다. 이 금리로 2억 원을 20년 원리금균등 상환으로 빌렸다면 매달 140만 6,452원씩 240번, 총 3억 3,755만 원을 냅니다.
명목으로만 보면 빌린 돈의 68.8%를 이자로 더 낸 셈입니다. 그런데 2026년의 140만 원과 2006년의 140만 원은 같은 돈이 아닙니다.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는 1.56배, 한국 M2(통화량)는 4.18배가 됐습니다. 마지막 회차 140만 원은 첫 회차보다 훨씬 ‘가벼운’ 돈이었다는 뜻입니다.
계산 가정 — 대출 실행 2006년 9월, 금리는 그달 예금은행 신규취급액 기준 주담대 평균 금리(5.77%)로 20년 고정, 중도상환·수수료·세금 없음. 실제 개별 대출 금리는 은행·신용도·담보에 따라 다릅니다.
물가로 다시 재면 실제 이자는 얼마였나
매달 낸 돈을 그달 소비자물가로 나눠 2006년 9월 가치로 되돌리면, 240회 상환액의 합은 2억 7,064만 원입니다. 원금 2억 원을 빼면 실질 이자는 7,064만 원입니다.
그래도 7,064만 원이 남았다는 게 핵심입니다. 이 기간 주담대 신규 금리의 평균은 연 4.15%,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2.26%였습니다. 금리가 물가보다 꾸준히 높았으니 인플레이션이 이자를 ‘다 갚아줄’ 수는 없었습니다. 2006년 9월 대출의 물가 기준 실질금리는 연 3.51%입니다.
| 대출 시점 | 그달 신규 주담대 금리 | 이후 소비자물가 연평균 (2026-08까지) | 실질금리 |
|---|---|---|---|
| 2001년 9월 | 6.26% | 2.42% (24.9년) | +3.84%p |
| 2006년 9월 | 5.77% | 2.26% (19.9년) | +3.51%p |
| 2008년 10월 (금리 최고점) | 7.58% | 2.12% (17.8년) | +5.46%p |
| 2013년 9월 | 3.82% | 1.96% (12.9년) | +1.86%p |
| 2016년 9월 | 2.80% | 2.25% (9.9년) | +0.55%p |
| 2020년 8월 (금리 최저점) | 2.39% | 3.06% (6.0년) | −0.67%p |
| 2021년 9월 | 3.01% | 3.13% (4.9년) | −0.12%p |
| 2023년 9월 | 4.35% | 2.14% (2.9년) | +2.21%p |
자료: 한국은행 ECOS 121Y006, 소비자물가지수 (KRW Window 계산). 실질금리 = 대출 시점 금리 − 이후 물가상승률 연평균, 금리 고정 가정.
2001년 이후 통계에서 ‘인플레이션이 이자보다 컸던’ 대출은 2020~2021년 저금리 구간에 받은 것뿐입니다. 이 구간 대출도 2022년 물가 5%대가 지나간 덕이지, 앞으로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습니다. 같은 실질금리 개념을 예금 쪽에서 본 글이 예금만 30년 했다면? 물가는 이겼고 통화량엔 졌다입니다. 예금자가 진 만큼 대출자가 이긴 구간과 그 반대 구간이 거울처럼 겹칩니다.
소득으로 재면 부담은 얼마나 줄었나
월 상환액 140만 6,452원은 2006년 1인당 국민총소득(월 환산 179만 4천 원)의 78.4%였지만, 2025년(월 환산 438만 1천 원)에는 32.1%입니다. 상환액은 그대로인데 소득이 2.44배가 되면서 체감 부담이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왔습니다.
‘빚은 인플레이션이 갚아준다’는 말이 실감 나는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. 정확히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명목 소득 증가가 갚아준 겁니다. 물가만 오르고 내 월급이 그대로였다면 이 효과는 없습니다. 1인당 국민총소득은 평균이라 개인 소득과 다를 수 있고, 달러로 보면 또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. 이 얘기는 1인당 국민소득, 원화로는 1.6배·달러로는 1.2배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.
통화량(M2)으로 재면 어떤 답이 나오나
M2 기준으로는 빌린 돈보다 적게 갚았습니다. 매달 낸 돈을 그달 한국 M2로 나눠 2006년 9월 비중으로 되돌리면 총 상환액은 1억 6,943만 원으로, 원금 2억 원보다 3,057만 원 적습니다.
통화량이 20년간 연평균 7% 넘게 늘어나는 동안 대출 금리는 연 4~6%였기 때문입니다. 세상에 도는 돈 전체에서 내 빚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줄었다는 뜻입니다.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.30배(KB, 2006-09 → 2026-08)였습니다. 물가보다는 많이, 통화량보다는 적게 올랐습니다.
| 기준 | 20년 총 상환액 (2006-09 가치) | 원금 대비 |
|---|---|---|
| 명목 (그냥 더한 값) | 3억 3,755만 원 | +68.8% |
| 소비자물가 기준 | 2억 7,064만 원 | +35.3% |
| 한국 M2 기준 | 1억 6,943만 원 | −15.3% |
M2 기준이 ‘대출은 무조건 이득’이라는 뜻은 아닙니다. M2 대비 비중은 내 빚이 경제 전체에서 얼마나 작아졌는지를 보여줄 뿐, 내가 실제로 쓸 수 있는 돈(구매력)을 말해주지 않습니다. 생활비 부담은 물가 기준, 자산 비중은 M2 기준으로 읽어야 합니다.
140만 원은 지금 돈으로 얼마인가
2006년 9월의 월 상환액 140만 6,452원은 2026년 8월 소비자물가로 약 219만 7천 원, 한국 M2(2026년 7월) 기준으로 약 587만 3천 원입니다. 두 숫자의 차이가 곧 ‘생활비로 본 부담’과 ‘자산 비중으로 본 부담’의 차이입니다.
이런 환산은 과거 돈 환산 계산기에서 한 번에 할 수 있습니다. 시작 연월과 금액을 넣으면 한국 M2·미국 M2·한국 물가·미국 물가 네 가지 기준을 한 화면에 보여주고, 1960년대까지 거슬러 계산됩니다.
대출로 산 집이 실제로 통화량만큼 올랐는지 궁금하다면 서울 아파트 가격지수 비교 계산기에서 매수 연월을 넣어 보세요. KB 지수 변화를 같은 기간 한국·미국 M2, 환율과 나란히 비교합니다. 대출을 갚은 뒤 남은 순자산이 통화량을 따라왔는지는 내 자산 성장 비교 계산기가 두 시점의 순자산만으로 계산해 줍니다.
고정금리와 변동금리, 누가 이겼나
2006년 9월에 빌렸다면 변동금리가 이겼습니다. 매달 그달의 신규 주담대 금리로 남은 원금을 다시 계산하는 방식(변동금리의 단순화)으로 돌리면, 총 이자는 1억 363만 원으로 고정금리 가정보다 3,392만 원 적습니다. 물가 기준 실질 이자도 4,525만 원으로 줄어듭니다.
| 2006년 9월 2억 원 · 20년 | 고정 5.77% | 변동 (월별 신규금리) |
|---|---|---|
| 첫 달 상환액 | 140만 6,452원 | 140만 6,452원 |
| 마지막 달 상환액 | 140만 6,452원 | 121만 7,327원 |
| 총 이자 (명목) | 1억 3,755만 원 | 1억 363만 원 |
| 실질 이자 (물가 기준) | 7,064만 원 | 4,525만 원 |
이유는 단순합니다. 2008년 10월 7.58%를 찍은 주담대 금리가 2020년 8월 2.39%까지 내려왔기 때문입니다. 금리가 장기적으로 내려가는 시대에는 변동금리가 유리했습니다.
반대 방향도 있습니다. 2021년 9월 금리 3.01%에 3억 원을 30년 변동금리로 빌렸다면 첫 달 126만 6천 원이던 상환액이 2022년 10월 157만 3천 원으로 13개월 만에 24% 늘었고, 2026년 8월에도 153만 6천 원입니다. 2026년 8월 신규 주담대 금리는 4.66%이고, 고정형은 4.88%로 고정형 통계가 시작된 2013년 이후 가장 높습니다. 금리가 오르는 구간에서는 같은 ‘변동금리’가 정반대 결과를 냅니다. 금리 인상기마다 집값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금리 올리면 집값 떨어지나? 서울 아파트 인상기 5번에 정리했습니다.
이 사이트는 앞으로 금리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지 않습니다. 과거 20년이 ‘금리가 내려가는 시대’였다는 사실, 그리고 그 시대가 대출자의 결과를 크게 좌우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입니다.
정리
- 2006년 9월 주담대 2억 원(5.77%, 20년)의 명목 이자는 1억 3,755만 원, 물가 기준 실질 이자는 7,064만 원이다. 인플레이션은 이자의 48.6%를 덜어줬다.
- 같은 상환액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8.4%에서 32.1%로 줄었다. 부담을 덜어준 건 물가보다 명목 소득 증가였다.
- 통화량 기준으로는 원금보다 적게 갚았지만, 이는 자산 비중의 이야기이지 구매력의 이야기가 아니다.
- 2001년 이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였던 대출은 2020~2021년 저금리 구간뿐이다. 지금 4%대 금리에서 ‘인플레이션이 갚아준다’를 기대하려면 물가와 소득이 그만큼 올라야 한다.